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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제떼 La jetee> : 트라우마, 그리고 정지된 순간들
    트랜드 분석/영화의 이해 2021. 9. 14. 22:06

    크리스 마르케의 <라제떼 La jetee>(1962)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는 영화가 동영상으로 구성되지 않고 스틸 사진으로만 이뤄졌다는 점을 인상 깊게 봤다. 사진과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다루는 이야기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영화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비틀며 소위 서사를 가지고 논다. 1960년대 영화라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영화의 독특한 호흡과 흐름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여러 맥락에서 분석할 수 있는 영화지만, 이 글에선 ‘트라우마, 그리고 정지된 순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남자다. 어린 시절 그는 오를리 공항에서 끔찍하게 죽어가는 한 남자와 그 모습을 보는 여자를 마주한다. 그 뒤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의 패자인 남자는 강제로 과거를 오가며 전쟁 이전의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그러던 중 남자는 과거에서 한 여자를 반복적으로 만난다. 아마 그는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 그의 행동은 큰 정신적 충격인 트라우마에 기인한 것이다. 어린 시절 그가 마주한 끔찍한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시간여행에 성공한 남자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오갈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시간여행이 다가왔다. 미래에서 온 자들은 남자에게 같이 미래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오를리 공항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과거의 공항으로 가게 된 그는 그녀를 향해 뛰어간다. 마침내 어린 시절 본 죽어가는 남자가 바로 본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남자는 실험실에서 쫓아온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고, 여자는 이미 모든 것을 안다는 표정으로 그를 차갑게 바라본다.

     

    서사를 살펴보면, ‘남자의 죽음(과거) → 남자의 시간여행(과거 ‧ 미래) → 과거의 여자를 기억하는 트라우마(현재) → 남자의 죽음(미래)’ 순으로 전개된다. 남자는 과거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면서 과거의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어린 아이도 바로 본인일 것인데, 결국 무한정 반복되는 굴레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과거와 미래가 평행을 이루며 진행된다는 ‘평행이론’으로 파악할 수 있다. <라제떼>를 리메이크한 작품인 테리 길리암의 <12 몽키즈>(1995) 뿐만 아니라, <터미네이터>(1984~)와 <나비효과>(2004) 등 많은 SF영화가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재작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라제떼>의 서사 구조는 SF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무엇보다 <라제떼>만의 특이점은 이러한 서사의 진행을 정지되어 있는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인공의 서사는 사진을 통해 표현된다. 왜 사진을 사용했을까. 영상과 다르게 사진은 정지되어 있는 한 장면이다. 먼저 관객은 주인공의 목소리보다 얼굴 표정에 주목하면서 그 의미를 읽어낼 것이다. 사진이 갖는 언어적 메타포와 깊이는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바라보게 한다. 이렇듯 사진의 형식적 특성도 있지만, 사진은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주인공이 처한 심리적인 트라우마와 연관된다. 영화 초반에 “기억을 부르는 건 일상이 아니다. 기억의 상처가 요동칠 때만 가능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억의 상처는 트라우마를 말하는 것이며, 트라우마는 기억에 남겨진 사진적인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기억하기 힘든 순간을 물 흐르듯 움직이는 영상으로 떠올리지 않는다. 모든 게 정지한 채로 조각나버린 한 장의 스틸사진으로 힘든 장면을 떠올린다. <붉은 기억>의 저자 다카하시 가츠히코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까지 온전한 상태로 유지되는지 추적하며, 그렇지 않는다면 어떤 이유로 기억이 왜곡되고 변형되는지를 밝혀낸다. 결론적으로 기억은 일부러 지우려는 과정에서 왜곡된다. <라제떼>에서 남자의 기억은 트라우마를 만든 결정적 순간을 지우면서 왜곡되었다. 남자는 기억을 지우려 애쓰는 과정에서 기억을 왜곡하고 변형하며 동시에 재구성한다. 남자의 기억 자체를 파편화된 스틸사진으로 표현했다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

     

     

     

     

     

    이 연장선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2001)를 살펴볼 수 있다. 주인공 레너드는 아내가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할 수 없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얻게 된다. 유일하게 그가 기억하는 건 자기 이름과 아내의 죽음 그리고 범인은 존G라는 것 정도이다. 그는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사진으로 남기고 몸에 문신을 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억은 왜곡되고 변형된다. 종종 그의 복기를 막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가 남긴 사진을 찢고 태우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은 사진이 파손되면서 함께 왜곡된다. <메멘토>와 <라제떼>는 바로 기억과 사진을 콘셉트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한 트라우마로 인해 당시 사건을 온전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왜곡되며 재구성된다는 점도 유사하다. <라제떼>에서 어린 시절 남자가 자신의 죽음을 목격한 것과 <메멘토>의 남자가 아내의 죽음을 목격한 건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는 트라우마다. 구체적으로 두 영화 주인공의 트라우마는 과거와 미래, 원인과 결과가 모호하게 혼합되면서 더욱 불안을 일으킨다. 또한 기억하기 힘든 상황인 사랑하는 대상이 상실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면서 불안해한다. 이렇듯 두 영화를 비교하면 기억과 사진 그리고 트라우마의 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독은 이러한 서사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있고, 관객은 영화를 어떤 의미로 해석하는지 물을 수 있다. 내가 <라제떼>에서 주목한 부분은 ‘삶과 죽음’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왼쪽 끝에는 남자를 죽이려는 죽음의 그림자가, 오른쪽 끝에는 남자가 살아야 하는 삶의 그림자가 있다. 한 공간 양극단에 삶과 죽음이 놓여 있다. 그 사이로 남자가 뛰어간다. 크리스 마르케 감독은 남자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실존적 고뇌를 구체화한다. 죽음으로 평행을 이루는 서사구조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살아간다는 동시에 죽어간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인간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 물음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한 것이다.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져있는 게 아니라 매 순간 함께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억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혹은 죽기 전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을 때 지나온 삶에 후회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인간의 실존적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영화가 던진 질문에 어떠한 답을 내릴지 고민하면서 나는 오늘도 살아가며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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